들면서•10
자서전1
다시태어나도
교단에 서리라
국군이 되어 월남해 교사가 되었던 이송연
배추골을 넘어 성진으로•14
나는 안천대군 진흥군파 44대 손•16
유학자 집안 그리고 희귀하다면 희귀한 내 사주•17
아버지의 손을 잡고 성진으로 유학가다•22
형의 죽음으로 좌절된 꿈 그리고 광복•32
성진역에서 본 김일성과 김정일•38
무력해져가는 청춘 그리고 무너져가는 문중•41
부상병이 되어 부산으로 •44
한국전쟁, 국군이 되어 월남하다•45
군번도 없이 투입된 전투•51
부상병이 되어 부산 제15육군병원으로 이송되다•58
교육선발대를 꿈꾸며 전주에서 거제도로 •62
‘상이군경원 특별 교원 양성소’ 그리고 전주사범학교•63
거제도 지세포 일운국민학교로 발령받다•69
홀로 월남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74
지심도 일운국민학교 분교로 가다•80
나는 ‘섬마을 교장 선생님’•85
지심도에서 아내를 맞다•88
방학 때면 찾았던 부산, 그때의 기억들•96
교사가 되어 다시 부산으로 •102
세월은 흘렀어도 피난시절의 흔적은 여전히•103
초량45번지 그리고 항도국민학교•107
초량국민학교 분교에서 항도국민학교로•111
맘모스 학교 그리고 새마을 교육•114
반공교육 그리고 학생 운동권 딸들•118
새로운 도전, 평교사에서 교감으로•119
다시 마주선 세월, 부산에서 고향을 품다 •124
‘만나야 합니다’, 북에서 온 편지•125
새로 족보를 쓰다•130
‘3일의 약속’, ‘함북 3일 전우 전공비’•131
실향민의 애환, 북녘 땅을 바라보는 영락동산•133
함께 해 견딜 수 있었던 세월들, 고마운 가족들•134
자서전2
황해도 사리원 똘똘이,
이제 부산이 고향되다
피난 와 장사꾼이 되었던 한송자
부산으로 피난 온 사리원 ‘똘똘이’ •140
북에 두고 온 오빠들•141
황해도 사리원, 그리고 부족함이 없었던 유년시절 •142
공산당 그리고 우리 가족의 비극 •147
원산에서 LST를 타고 부산으로 •150
아미동 골목시장과 국제시장 사거리 • 154
함께 피난 온 일행과 아미동으로•155
토성국민학교 그리고 아미동 골목시장•158
잊을 수 없는 이웃, 부산 토박이였던 주인집•162
옛 시청 앞 피난민 천막촌에서 용두산 하꼬방으로•164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고 정혜언니•167
국제시장 사거리에서 시작한 박상장사•171
'미진백화점'에서 국제시장으로
그리고 평화시장까지• 176
운명으로 받아들인 결혼, 그때 내 나이 열일곱•177
인민군 포로가 되어 죽을 고비를 넘겼던 남편•181
밀수품을 팔았던 ‘미진백화점’•183
밀수품 단속으로 문을 닫게 된 ‘미진백화점’•188
구제 옷 장사를 시작한 국제시장•190
코르셋, 구제 옷을 넘어 제품 생산으로•194
갑작스러웠던 엄마의 죽음, 다시 찾은 교회•197
깊은 상처를 남긴 빚보증•201
국제시장에서 처음으로 기성복을 만들어 다시 일어서고•204
내게 각별하셨던 시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시고•205
국제시장에서 평화시장으로•212
시장에서 다시 만났던 친구들•220
범일동에서 문현동으로•221
부산에서 뿌리를 내리고•226
내게 주신 특별한 은혜•227
늘 고맙고 또 미안했던 아이들•237
장사를 접고 평범한 주부로•244
이제 내 고향은 부산•250
나면서•252